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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 포스코미술관

출생

1970, 서울

장르

조각, 설치

홈페이지

www.ur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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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le Lamp(템플 램프), 2013

금속, 기계부품, 24K 금박, 유리, 레진, 전자기기(CPU 보드, 모터, LED), 36x50x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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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빛나는 기계 생명체, 신화에 춤을 추다 - 최우람의 움직이는 조각을 통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 탐구

인류는 공상과학 소설들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해왔다. 그 미래는 대재앙 이후의 세상, 외계인들의 공격, 핵폭발, 바이러스 변이로 표현된다.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 세계종말에 대한 담론들로 혼란스러워하며 최첨단 기술의 개발로 응답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광활하고 황량한 땅에서 표류하는 듯 보인다. 녹색기술에 매달리는 건 어쩌면 우리의 오랜 불임증을 숨기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희망도 있다는 것을. 영화나 문학의 허구는 우리의 상상력을 반영하지만 걱정, 불안, 그리고 우리가 사는 잔혹한 현실도 드러낸다.
 

미래기술로 탄생한 불가사의한 생명체
어둑어둑한 방에 들어서면, 조용히 공중을 부유하며 숨을 쉬듯 은은한 빛을 깜빡이는 미지의 생명체가 있다. 금속성 광채로 번들거리는 모양새가 물고기나 새를 닮았다. 미래의 기계생명체로 진화한 어둠 속의 무인정찰기인가? 아마도 줄지어 유영하는 금속의 꽃들인가 보다. 암호화된 꽃잎들을 가진 꽃들은 흑거미의 모습을 한 거대한 매트릭스들이다. 꽃잎의 반복적인 움직임은 빛과 그림자의 떨림을 반영한다. 꽃들은 꽃잎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가까이 있는 것이든 멀리 있는 것이든 모조리 삼켜버린다. 회전하면서 반짝이는 암술들은 꽃의 중심에 솟아나와 그 생산의 이미지가 간과되지 않게 한다. 왠지 그 암술들은 영화 속의 수많은 별들의 전쟁에 나오는 레이저 빔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바로 2006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열렸던 최우람의 전시 <어바너스(Urbanus)>에 대한 나의 감상이다. 이 전시는 생명체의 모습을 한 기계 동력 조각을 통해 도시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표현한다. 제목은 고층빌딩들에서 내려다본 도쿄에 대한 작가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 미술관의 독특한 위치와 예술작품은 전시되는 공간에 호응해야 한다는 믿음을 근거로 최우람은 도쿄의 고층빌딩 꼭대기에 숨어있는 도시괴물들을 창조한다. 수컷의 기계괴물들은 주변을 배회하며 전류와 빛을 흡수해 둥지에 있는 암컷들을 먹이고 새끼를 생산한다. 그들의 서식지, 아니 전시 장소의 배경은 미술관의 커다란 창밖에 수많은 사람들과 불빛이 가득한 메트로폴리탄 지역이다.
암컷의 바로 옆에는 갓 태어난 기계부유물들도 달려 있다. 성체들과 새끼들을 같은 방에 배치한 것은 이 도시 떠돌이들의 가계도를 확인시켜주기 위함이다. 관람자들은 현대미술 전시회가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미래의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최우람은 오늘날 한국에서 움직이는 조각 분야의 중심인물이다. 기상천외하고 기묘한 기계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금속, 모터, LED 조명을 이용하는 그는 단순히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주고 일대기까지 부여한다. 이름은 기계생명체들이 현존한다는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 라틴어로 지었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이 오래되고 낯선 라틴어 이름들 안에서 작품의 의미와 함께 상상력에 대해 살펴보기를 바란다. 작가는 가상연구기관인 연합기계생명체연구소 우람(URAM)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빌어, 모든 기계생명체는 선사시대 혹은 외부세계로부터 새롭게 발견된 생명체이며 우리가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와 같은 작품에 대한 소개와 연구도 물론, 최우람의 작업의 일부, 스토리텔링이다. 
 

우주의 활동력을 기계의 움직임으로 압축하기 
2008년 리버풀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는 항구도시들에 대해 상상한 작품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연구소 우람(URAM)의 보고서에 따르면 달은 인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사람의 능력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리버풀 해안가에 사는 한 어린이의 관찰을 토대로 한 보고서에 의하면 바닷물에 반사되는 달빛의 영향으로 항구도시인들이 집단 환각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증후군이라고 밝혀졌다. ‘전시 중’인 생명체들인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번데기들은 지난 수세기간 달로 인해 바다에 가라앉은 크고 작은 배와 노, 해상장비들로 이루어진다.
조수와 달처럼 번데기의 갈색 촉수들은 호흡의 박자에 맞춰 차례로 물결치듯 움직인다. 이 번데기는 새로운 달과 조수의 조합이다. 이것의 평화로운 움직임을 보면서, 작품의 미세한 기계적 움직임을 통해 우주의 활동에너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을 느낄 수가 있다. 도쿄의 <어바너스(Urbanus)>처럼, 리버풀의 개똥벌레 번데기는 무시되거나 우리를 편집증으로 몰아가는 자연의 에너지를 소리 없이 흡수하고 있다.
최우람한테 생명의 정의는 확실한 것이 아니다. 기계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명은 태동한 것이다. 기계의 움직임은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기계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들이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사회 속에 현존하는 그들에 대해 관람자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최우람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그의 가족들이 그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최우람의 할아버지는 기계 기술자였고 부모는 모두 예술가이다. 자라난 환경을 보면 그가 자라서 기계조각을 선택할 만하다. 최우람은 혜택 받은 강남 지역에서 자라면서 무자비하게 올라가는 고층빌딩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고층건물들이 언젠가는 살아서 움직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공상과학영화와 로봇만화가 흔한 세대가 기계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인양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우람의 작품들에서 어딘가 모르게 영화 ‘에일리언’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생명체와의 닮은 점을 발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성적 욕망과 기계의 살
기계와 자연의 대비는 최우람 이야기의 핵심이다. 최우람의 작품들은 섬세한 금속기관들과 조각들의 연속적인 움직임으로 생명체를 모방하고 숨쉬는 동작을 흉내 내며 살아있음을 표현한다. 동물 다큐멘터리,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과 같은 TV 프로그램은 진화와 움직임에 대한 영감을 주었으며 자연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기계구조에 적용하게 했다. 최우람은 우주를 상징하는, 균형 있고 순환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만듦으로써 생존에 대한 욕망과 억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나 루미노(Una Lumino)>의 예를 들어보자. 이 2008년도 작품은 5미터 높이의 벌집모양 조각으로 일종의 지지대 같은 확실한 뼈대나 내부구조물이 없다. 천여 개의 꽃 모양 흰색 반투명 조명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서로 메시지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종의 군집 같다. 각각 움직이는 꽃들의 꽃잎은 펼치면 밝아지고 접으면 어두워진다. 꽃의 생활주기는 끊임없는 움직임의 연속으로 변환된다.
<우나 루미노(Una Lumino)>는 생김새와는 달리 벌이나 개미처럼 노동분업을 하지 않는다. 꽃 모양의 조명등들은 기생생물에 가깝고 미지의 중앙신경체계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체계 안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체계가 감지하는 대로 반응한다. 이 예술작품은 마치 폭발 이후에 살아남은 생명체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몸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숨쉬고 반응하는, 단순히 본능에 의존하여 생존하는 기능뿐이다. 우리는 <우나 루미노(Una Lumino)>에서 최우람의 ‘전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가 있다: 한 컵의 빛은 ‘부분’인 동시에 전체의 파편이며 모든 ‘부분’이 하나의 활동적인 집합체로 모일 때만이 ‘생명체’로서 의미가 있다. 시작도 끝도, 절정도 우연도 없이, 모든 ‘부분들’은 이 구조의 조화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순환하는 내부에너지가 주는 무한한 안정성은 <우나 루미노(Una Lumino)> 군집의 협동과 생존의 기본적 양식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살아있는 기계조각은 언제든 불편하고 잠복해있는 위협에 맞닥뜨릴 수 있다. <우나 루미노(Una Lumino)>를 둘러싼 더디고 소리 없는 아우라는 독일작가 레베카 혼의 기계 설치 작업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터의 동력을 이용한, 펄럭거리거나 흔들리는 깃털과 나비들은 언제나 모호한 호소력이 있다.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거부하며 개입을 방해하고 유혹한다. 특이하다. 레베카 혼은 차가운 기계의 느린 움직임을 통해 살과 섹슈얼리티의 독특한 감각을 전달한다. 최우람의 작품은 혼의 작품과 비슷하다. 둘 다 쾌락과 위험 사이를 오간다. 
 

변신의 신비로운 연금술
해일처럼 일렁이는 비늘이나 날개처럼 보이는, 단단한 잎들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살. 그 살은 기묘하다. 겹겹이 쌓인 덩어리는 연속적이고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변화의 가능성과 불가사의함의 시각적인 성질을 드러낸다. 최우람의 변신의 연금술은 형태간의 복합적인 관계성과 움직임의 조작으로 기계생명체에 모호함과 신비함을 불어넣는다. 기계생명체들이 움직이는 기이한 공간, 내부소통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매우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최우람의 작업은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에는 특이한 형태의 생명체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작가는 예술을 URAM의 이름으로 자연과학의 방식으로 탐구하고자 했으며 이 시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형태와 움직임을 실험한다. 2010년 이후 작가는 신화로 옮겨가 상징과 사회적 함의에 관심을 갖는다. 이와 함께 작품에 라틴어가 아닌 산스크리트어 제목을 붙이기 시작한다.
<샤크라-2552-a (Cakra-2552-a)>는 이 새 시기에 나타난 작품이다. 불교신자인 만델라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의 제목 ‘샤크라’는 바퀴, 회전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다. 방주처럼 생긴 돌아가는 금속 조각과 기어로 구성된 바퀴 모양 설치 작품인데 첫눈에는 다이얼이 없는 속이 드러나 보이는 시계 같다. 속이 보이는 내부구조와 함께 시간의 비밀도 풀린 듯, 우리는 시간과 춤을 추며 돌라고 초대받는다. 
<샤크라-2552-a (Cakra-2552-a>는 마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우르는 우주 그 자체인양, 안정적인 속도로 고요하고도 평화롭게 돌아간다. 한편, 2013년 작 <우로보로스 (Ouroboros)>는 뱀이 자신의 꼬리를 먹는 동서양의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신화에서 뱀의 입은 탄생을, 꼬리는 죽음을 상징한다. 영원한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로보로스(Ouroboros)>는, 생산과 파괴 혹은 긍정의 힘과 부정의 힘을 같은 몸체에 가지고 있다. 기계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작가의 창조적 관심은 계속된다. <샤크라-2552-a (Cakra-2552-a)>와 <우로보로스(Ouroboros)>는 모두 우주의 움직임과 시간의 진행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우주의 에너지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언에서 고대의 살아있는 화석에로의 귀환까지
신화로의 전환은 최우람의 예술을 예언적 그 이상이게 하며 화석 같은 골동품이 되게도 한다. 앞으로 이야기할 두 작품은 신화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만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있다. <아르보 데우스(Arbor Deus)>는 지구온난화를 예언하는 신들의 나무를 구체화한다. 선사시대에 인간들과 신들, 모든 생명체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멀어지자 빙하기가 왔다. 인간들은 마지막 숲으로 들어갔고 나무와 새와 무기의 신들의 보살핌을 기원했다. 무기의 신은 자신의 머리를 나무의 몸에 넣고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새의 신이 자신의 자궁을 그 강철 나무에 넣자 나뭇가지들은 강철 날개로 변했다. 세 신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신들은 죽기 전에 인간들에게, 강철 날개가 있는 나무는 계속해서 자라 백 년 안에 엄청난 숲을 이룰 것이며, 해를 지구에 가까이 가져오기 위해 날갯짓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다시 파멸에 이를 수 있으므로, 나무가 너무 빨리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따뜻함이 간절한 나머지 인간들은 강철 날개 나무를 억지로 빨리 자라게 했다. 나무는 열흘 만에 지구 전체를 덮었다. 인간들은 자축했고 축제를 벌였으며 흥청망청 마셔댔다. 그러나 인간들은 곧 바깥에 머물 수 없을 만큼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들은 그제서야 기후를 바꾸고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날개들을 녹이기 시작했으나 때는 너무 늦었다. 속수무책이었고 인류는 문명화의 엄청난 열기에 몰살당하고 만다. 강철 날개 나무는 계속해서 자라나 지구는 점점 태양에 가까워졌고 결국에는 녹고 말았다.  
 
또 다른 작품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은 ‘시바의 춤’으로 잘 알려진 10세기 인도 조각을 참조한다. 원래 ‘시바의 춤’은 탄생, 죽음과 환생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최우람은 창조, 보호, 파괴의 과정에 대한 은유만을 취하여 동굴의 수호자 신화를 지어낸다. 수호신의 이미지는 얼음동굴에서 사냥하는 습성이 있는 남극 바다표범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신화에서 수호자는 동굴을 지키면서 동굴이 막히지 않게 입구를 계속해서 갉아먹는다. 사실 그 동굴은 다른 세계로 가는 터널의 입구이다. 터널의 한쪽이 열리면 그 수호자는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서 굴을 파는 자, 다른 동굴의 수호자가 될 씨앗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점점 인간들이 다른 세계에 대해 잊어버리면서 수호자들은 하나둘 죽기 시작한다. 터널과 연결된 구멍, 소통의 상징은 과거의 기억과 함께 사라진다. 수호자는 조화로운 공존을 뜻하고 수호자의 존재는 우주의 순환과 균형을 상징한다. 하지만 최우람의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은 마치 휴면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두개골은 어떤 표본 같은 인상을 준다.
 

화려한 겉모습 아래의 부패와 무질서 
선사시대의 신화는 여전히 영향력 있는 참고자료이자 현대기술과 사회의 맥락 안에서 대조적이다. 최우람은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 2012년 이래,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전통사회의 가치를 가차없이 비판한다. 최우람의 초기 작업에서 봤던 환상적인 기계생명체와 달리, <파빌리온(Pavilion)>과 <회전목마(Merry-go-round)>는 아름답고 섬세한 이미지, 관람자들에게 보다 낯익은 주제로 돌아섰다. <회전목마(Merry-go-round)>를 예로 들어보자. 진열대 위의 미니어처 회전목마는 첫눈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 속임수가 있다. 음악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회전목마가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데 뭔지 알아볼 수 없고 겁이 날 정도로 돌아간다. 최우람은 이 작품에서 동시대 한국인들의 가치들을 반영한다. 작가의 눈에 한국인들은 영원히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돈, 지위, 힘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삶의 참 가치는 껍데기만 남은 지 오래다. <파빌리온(Pavilion)> 역시 명예와 재산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데 대해 묻는다. 최우람은 물신주의의 환영을 표현하기 위해 눈부시고 정교한 제대를 만든다. 화려한 황금 볼 아래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떠돈다. 그 봉지는 부가 넘쳐나는 나라의 타락한 천사이고 천정에 반사되는 빛은 막대한 불안을 만들어내는 위협을 표현하는 복잡한 망 같다.
황금의 타락이거나 광증, 신화적 괴물이거나 도시의 기생생물들, 최우람의 기계 조각은 움직임 안에서 기이한 아름다움과 죽음의 절박함을 완성한다. 이 기계생명체들은 바다 깊이 떠다니는 열대어 혹은 칠흑 같은 우주의 예상치 못한 별빛의 섬광처럼 흐릿한 빛을 내뿜는다. 부패한 냄새와 격분한 돌연변이들이 있는데 조용한 움직임들은, 사실 미심쩍은 협박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동시대의 불안감, 혼란과 완벽한 무질서에 맞닥뜨린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원초적 공포이다.   
 

초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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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자동기계의 꿈: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


“그러므로 신체의 각 부분은 그 안에 각각의 욕구와 균형을 이루는 힘을 지닌 스프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기계에 들어 있는 스프링의 세 부작용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의 작용이 모든 자연적이고, 자동적이며, 생명과 관련되는 육체적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절벽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신체가 겁에 질려 기계적으로 한 발 크게 뒤로 물러서지 않는가? 그리고 주먹이 날아올 것 같으면 우리의 눈썹은 자동적으로 닫히지 않는가?... 허파는 끊임없이 송풍기처럼 자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가?”                                                  
- 라메트리, 『인간기계론』 중 (1)
 
기계 미학과 자연형태의 상응
반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하나의 중심축을 중심으로 6개의 원통이 시계 방향으로 동시에 회전한다. 각 원통에는 장식 문양 형태로 가공한 금속판이 바깥쪽으로 맞물려 있는데, 90도에서 120도 사이로 위아래로 움직이는 왕복 운동을 한다. 새의 날개나 구름 모양의 장식판은 각 층마다 6개씩 총 5층으로 겹쳐져 있고, 아래층의 금속판 하나에 위층의 금속판이 두 개씩 물려 있다. 금속판의 모양은 층마다 달라지며 변주되고, 재질 또한 황동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번갈아 바뀐다. 각기 왕복 운동을 하는 장식판은 전체적으로 중심을 향해 모였다 흩어지는데, 산스크리트어로 바퀴를 의미하는 제목처럼 만개한 꽃 모양으로 활짝 펼쳐졌다공처럼 움츠러들기를 무한히 반복한다.위는 전시 중인 갤러리 현대 <램프가게(Lamp Shop)> 전의 출품작 <금빛 차크라 램프(Gold Cakra Lamp)>(2013)를 묘사한 것이다. 장황할 정도로 상세한 설명은, 소품이라 최우람 작업중 제일 단순한 편인 이 작품도 구조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정교함과 형식적 아름다움이 투입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본질상 움직이는 조각인 최우람의 작업이 다른 키네틱 조각과 차별점을 지니는 시작은 바로 이 부분, 즉 구조 및 세부의 형식미와 움직임에 있어서 섬세한 우아함이기 때문이다.
수공예를 연상시킬 정도로 빼어난 장식미는 관객을 매료시키는 일차적 요인이다. 같은 전시에 출품된 <금빛 곤충 램프(Gold Insecta Lamp)>(2013)의 구 동부는 공작새의 깃털이 나금관의 화염문 내관 장식을 연상시키고, <고르곤 샹들리에(Gorgonian Chandelier)>(2013)의 펄럭이는 갓은 일렁이는 파도나 흔들리는 해초의 문양으로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다. 수공적인 정밀함은 재료의 선택, 가공에서부터 작품의 설계 및 제작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고르곤 램프(Gorgonian Lamp)>(2013)의 장식판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에칭으로 일일이 떠서 만들었으며, 이후 불에 그을려 광택을 죽이고사포질해 골동품 느낌이 나도록 색감을 조정한 것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되어 있는 <오페르투스루 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2008)의 29쌍의 날개는 CNC(컴퓨터 수치제어)가공을 통해 ABS수지로 원형을 만든 후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무늬목을 입히고, 그중 가장 나무 무늬가 잘 드러나는 수종을 골라 실리콘으로 무늬를 떠내고 FRP 플라스틱으로 최종 모형을 만들어 색칠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노동집약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단계의 수공적 개입을 요하는 것은 외견상 두드러지는 요소만이 아니다. 작품마다 크기와 형태, 이에 따른 모터나 기어의 배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볼트나 너트, 베어링 같은 세부 부품까지 전부 맞춤설계해야 하는 것이다.<차크라 램프>처럼 간단한 경우에도 20-30여 종의 부품 150여 개가 필요하며, <오페르투스>처럼 거대한 경우에는 2백여 종의 5천 개 이상의 부품이 새로 제작된다. 그런고로 시각예술로서 최우람 작업이 지니는 형식적 완성도는 설계와 제작에 있어서의 장인적 공정과 그 결과 도출되는 형태적 조형미가 담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외견상 최우람근작의 장식적 패턴이 아르누보를 연상케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유비다. 표면적으로는 전술한 수공예적 장식성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이유겠지만, 형태가 도출된 근원이 유사하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이다. 넝쿨 모양의 장식으로 유명한 아르누보는 자연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유기적 구조에 대한 관심이 특징이며, 가공성이 좋은 금속으로 식물의 가냘픈 곡선을 추상화해 재료와 구조, 표현의 통합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우람의 작업 역시 금속의 기계미와 유기체의 역동성이라는 상충하는 요소가 병존한다. 일단 기계 생명체(Anima Machine)라 통칭되는 최우람의 유사(pseudo) 생물들은 형태나 기능면에서 실제 유기체로부터 모티프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르곤 샹들리에>는 물 속에서 흔들리는 부채산호의 움직임을 본떴고, <우나루미노(Una Lumino)>(2008)는 따개비가 열리는 모양에서 착상을 얻었으며, <제트 하이 아투스(Jet Hiatus)>는 정어리 떼를 파고드는 상어의 이빨이 영감의 원천이다. 하지만 좀 더 결정적인 부분은 둘간의 닮음이 형태적 유사성을 넘어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흔히 장식 미술 로 오해되곤 하는 아르누보의 숨겨진 기여 중 하나는 형태의 기능적 일치로, 단순 장식이 아닌 기능을 위한 금속 구조재가 미적인 목적도 달성하는 것이다. 비올레르뒥(E. Violletle Duc)의 주철받침대나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의 지붕트러스는 구조물인 동시에 유기체의 감각적인 곡선을 훌륭히 살려낸 장식이다. 최우람의 작업에서도 동작을 위한 실용적 부품은 조형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이런 경향은 전작업을 망라하지만, 이번 <램프가게> 전의 시원인 초기작 <루미나 비르고(Lumina Virgo)>(2002)는 장식과 기능의 합치라는 면에서도 분절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더듬이를 만지면 불이 들어오는 이 소형 램프에서 날개를 열고 닫는 기능을 하는 구동장치는 크고 작은 기어인데, 이들은 톱니바퀴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모티프로 한 손모양의 장식을 이룬다.(2) 형식과 기능이 일치하는 합리성은 기계 미학의 중요한 덕목으로, 최우람 작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움직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물 기계와 기계 생명체
한 인터뷰에서 최우람은 자신의 작업을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기계라는 것을 주제로 삼아, 기계가 생명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3) 여기서 움직임의 속성은 최우람의 조형물이(개념이나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여타의 키네틱 조각과 변별력을 갖는 주된 요소다. 최우람의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살아 있는 생물의 움직임을 본뜬 것이다. 이때 흥미로운 지점은 최소한의 요소로 최대치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금빛 곤충 램프>에서 움직이는 다섯 개의 날개 부위는 모두 하나의 축에 연결되어 있다. 메뚜기의 뒷다리 모양을 확장한 장축은 하나의 모터로 통제되는데, 각 날개는 기어의 맞물림에 따라 차례로 펼쳐졌다 접힌다. 이때 날개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날개가 동시에 접혔다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최하단의 날개가 최대한 내려갔을 때 중간 이상의 날개들은 이미 올라오는 중인 것이다. 여기서 이 동작이 디지털로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회전축의 원리에 의해 통제되는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것이 핵심이자 매력이다. 회전 중심에서 가까울수록 동작 반경이 커지고 멀수록 작아지는 원리를 활용해 각 날개의 작동범위에 차이를 주는 것이다. 되도록 단순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지향하는 태도는 작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최우람이 즐겨 사용하는 모티프 중 하나인 새 날개의 움직임도 예외가 아니다. <아르 보르 데우스 페나투스(Arbor Deus Pennatus)>(2011)의 양 날개 역시 모터 하나로 제어되는데, 모터에 연결된 기어는 인접 기어들을 회전시키고 기어에 연결된 두 개의 회전축이 각기 다른 박자로 움직임으로써 우아한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아름다움과 효율성의 결합이라는 기능주의 미학은 동물의 생체 구성원리와 동일하다. 가장 효율적인 기능의 발휘를 위한 구성이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기계와 동물의 유비는 최우람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요체다. 소재를 얻는 동기도 동식물이고, 세부구조나 동작의 설계를 실제 생물의 골격이나 움직임에서 얻을 뿐 아니라, 경제성을 지향하는 작동 원리나, ‘있을 법한 생명체(lifeasit could be)’(4) 를 의도하는 작품의 최종적인 목표까지 모두 기계와 생물의 결합으로 귀결된다. 동물을 기계에 비유하는 것은 상당히 연원이 오랜 일로, 직접적 계보는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카르트는 동물이 오직 물질로만 이루어진 기계라는 동물-기계론을 주창했으며, 인간 역시 영혼을 제외하면 시계나 자동 인형이 평형추나 톱니바퀴의 배치에 따라 움직이듯 인체 기관들도 기계적 배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았다.(5) 이러한 인간 기계론은 라 메트리에 와서 집대성되었는데, 그는 인간을 ““그 자신의 태엽을 스스로 감는 기계””이며,“ “영속적인 운동의 살아 있는 상””이라고 정의했다. 영혼 역시 생각하는 근육인 뇌의 작용이라고 본 철저한 유물론자인 라 메트리에게 인간 조직의 운동은 순전히 기계적인 것으로, 일종의 유압장치인 심장이 순환시키는 피로 전달되는 열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었다.(6) ‘자체의 작동 원리를 담고 있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인식은 인간을 일종의 자동 인형으로 보는 것이다. 이 논의는 정밀 기계공학의 발달과 해부학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실물로 구현되게 된다.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걸로 유명했던 보캉송의 기계 오리나 지금도 작동하는 자케-드로의 글쓰는 자동 인형이 그 예다. 이들은 철학적 측면과 공학적 측면 양자 모두에서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가 발생한 계보학적 뿌리에 해당한다.

자동 인형과 인공생명 사이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를 18세기 자동 기계의 격세유전으로 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이 둘은 모두 내부구조가 섬세하게 설계된 정교한 기계 장치며,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나 기능을 기계와 일치시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보캉송이 플루트를 부는 인형을 만들 때 인체의 호흡 기관을 모방해 허파와 기도, 입술, 혀를 움직이는 레버와 밸브를 만들었다면, 최우람의 <아르 보르 데우스 페나투스>는 요골과 척골로 이루어진새날개뼈의 이중 구조를 본떠 펄럭이는 새의 날갯짓을 기계적으로 구현해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유사성은 기계 장치를 만드는 동기 혹은 욕망에 있다. 최우람의 작업은 흔히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나 인공생명체, 로보틱스, 사이버 아트 같은 단어들과 결부되어 논의되지만, 실제 그의 작품은 모터와 기어, 구 동부로 구성된 기계역학의 기본에 원론적으로 충실하며 움직임의 패턴과 시점을 통제하기 위해 CPU보드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기계에 대한 원초적인 매혹은 최우람이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고백한 바 있는 사실인데, 18세기의 자동 인형들 역시 일차적으로는 최고 수준의 정밀기술을 적용한, 기계 이상의 기계를 만들려는 발명가의 꿈에서 시작된 것이다.(최우람의 많은 작업에서 정교한 시계의 태엽 장치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아가 ‘움직이는’ 자동 기계는 궁극적으로 생명의 모방 혹은 창조로 이어진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움직임은 생명의 고유한 속성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지의 유무는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속성의 몸체를 한 명백히 무생물인 최우람의 기계들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생명의 상징인 빛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 중 ‘숨을 쉬는 기계’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은 꽤나 시사적이다. 그의 작업 중 가장 대규모며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오페르투스루 눌라 움브라>의 장쾌한 군무는 갈비뼈 혹은 갑각류의 껍질이 들썩이며 커다란 숨을 뿜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작년의 개인전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쿠스토스카붐(Custos Cavum)>(2011) 역시 인기의 비결은 바다사자를 닮은 피조물이 사실적으로 숨을 들썩이는 데 있었다. 들이마실 땐 빠르게 부풀었다 내쉴 땐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내려가는 움직임의 차이는 기계가 살아 있다고 믿게 되는 핵심기제다. 생기가 없는 존재가 숨을 쉬는 것은 무생물이 생물이 되었다는 징표고 이를 만든 제작자에게 신의 지위를 부여하는 행위다. 모든 자동 인형에 내재된 존재론적인 야망은 사실상 프로메테우스적인 반역, 즉 생명 창조의 특권에 대한 찬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기계 생명체에 동반되곤 하는 유사과학적 학명과 가상의 탄생설화 혹은 생태 보고서는 객관성이라는 과학의 권위를 빌어 ‘있을 법한 생명체’에 생물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부여하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결국 최우람의 기계 생물들은 최대한 자연을 모방하려는 자동 인형의 꿈을 넘어선다. “인간 자신의 피조물들이 스스로 군집하여 번식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이 탄생하려는(기계) 종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실험”(작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을 초월해 자체의 논리와 자유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또 다른 인공생명으로 확장된다. 이들은 단순히 현존생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요소를 상호조합해 범주 구분을 흐려놓는다. 제트 엔진의 움직임과 상어의 이빨을 융합함으로써 기계와 동물을 교배시키기도 하고(<제트 하이 아투스>), 따개비와 꽃을 합쳐 동물과 식물의 잡종(<우나루미노>)을 만들기도 한다. 나아가 이준(quasi) 생명들은 성체와 유생, 암컷과 수컷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이루거나(<어바누스(Urbanus)> 연작(2006)), 상호작용하며 군집생활을 영위하는 가상의 기계 생명체 군락(<우나루미노>)을 재현하면서, 개별적 존재에서 자연 혹은 우주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생명의 기원을 되짚어본 우주연작인 <겁(Kal pa, 劫)>(2010)이 그 길의 끝에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이가 상생물들이 인공생명의 과학적 정의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가 아니라, 생명의 개념을 상상의 지평에서 재고하고 확장하는데 얼마나 기여하는가다. 그것이 시각예술로서 최우람의 작업이 기능하는 지점이자, 그의 기계 생명체가 인조 인간을 꿈꾸던 18세기의 자동 기계와 창발을 지향하는 21세기의 인공생명을 재매개(remediation)(7)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의 용어로, 뉴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나 동시대의 다른 미디어를 이용하면서 개조하는 작용을 뜻한다. .하는 접점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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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a Mettrie, L'Homme Machine, 1748. 번역은 다음의 책에 의거하나 약간 수정했다. 게이비 우드 (김정주 역), 『살아있는 인형』, 이제이북스, 2004, 42쪽. 
(2) 방점은 다르나 김선희 역시 2006년 모리 미술관 전시 서문에서 <루미나 비르고>를 최우람 작업 전체를 대변하는 작업으로 주목한 바 있다. Kim Sunhee, "Alien Life Forms: The Art of Choe U-Ram, "City Energy-MAMPROJECT004, Mori Museum of Art,2006, p. 31. 
(3) 2009년 1월 18일 앨리스온(Alice on)과의 인터뷰. 
(4) 인공생명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 ton)의 용어로, 그는 생명의 개념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lifeas we knowit)’에서 ‘있을 법한 생명(lifeasit could be)’으로 확장시켰다. Christopher Langton, "Artificial Life," Artificial Life, proceedings Santa Fe Institute Studies in the Studies of Sciences of Complexity, Vol. 6, Addison-Wesley, 1989. 
(5) 게이 비우드(김정주 역), 『살아 있는 인형』, 이제이북스, 2004,38쪽. 
(6) 라 메트리 인용은 다음의 논문에서 따온 것이다. 조영란, 「라 메트리의 인간 기계론에 나타난 심신이론과 18세기 생물학」, 『한국과학사학회지』 제13 권 제2호, 1991,148쪽. 
(7) Jay David Bolterand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MIT Press, 2000, pp. 3-15

문혜진 (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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